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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책 #9 -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에게 침투한 악어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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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악어 프로젝트>

저자 : 토마 마티외

출판사 : 푸른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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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에게 침투한 악어 바이러스

 

 

이런 상상을 해보자. 약 2억년 전 중생대에 서식했던 악어의 조상 '테레스트리수쿠스Terrestrisuchus'(이름이 복잡하니 '테레'라고 하자)가 멸종하지 않은 채 인류와 금단의 이종교배를 이루어 인류의 한 부류로 성장한 것이다. 그리고 이 '테레'들은 인간 남성들을 다 잡아먹어버리고 남자 사람의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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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녀석이 바로 위험천만한 '테레'다

 

 

 

이 괘씸한 테레놈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0. 대부분 수컷이다.

1. 고등생물체로서의 성욕 조절 능력이 없다.

2. 인간 여성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잡아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인간 여성들을 다른 테레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 내가 잡아먹기 위해서다.

4. 인간 여성들이 테레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것은 인간 여성들의 옷차림이나 행동거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5. 하지만 은 인간 여성들의 옷차림이나 행동거지와 별로 상관 없이 꼴리면 움직인다.

1. 왜냐하면 다시 말하지만 그들에게는 고등생물체로서의 성욕 조절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상대의 옷차림에 따라서 행위를 조절할 수 있다면, 주장한 바와 달리 성욕 조절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악어 프로젝트>에는 이 테레들의 온갖 만행들이 펼쳐진다.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있는 인간 여성에게 다가가 자신의 거시기를 드러내고 평가해주길 요청하거나, 까페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인간 여성을 향해 성행위 장면을 연상시키는 춤을 추고는 키득거리며 사라진다. 공공장소에서 아무렇지 않게 원나잇 요청을 했다가 거절 당하자 큰 소리로 인간 여성을 향해 모욕적인 말들을 늘어놓기도 하며, 마음에 들었다는 이유로 반나절이 넘게 인간 여성의 뒤를 쫓는다. 직장에서는 상사 또는 관계 업체 직원 테레들이 성관계를 요청하고, 거절하면 업무에 불이익을 가하며, 집에서 연 파티에서는 술에 취한 어린 여자를 성추행한다. 처음 만난 외국인 테레가 인심 좋게 건넨 양주 한 잔에 최음제가 들어 있고, 동거하는 테레와 다투고 잠자리를 거부했더니 테레가 여성의 방 바깥 창문을 뜯어내고 들이닥친다. 육해공 어디에나 테레는 있고, 이들의 행동은 테레라는 종족 특유의 특성을 틀림없이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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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하루하루 끔찍한 일상을 보내면서도 '고등생물체로서 성욕을 조절할 줄 아는 인간 남성'들이 모조리 멸종해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테레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 중에는 테레들의 행동과 언어습관을 살아남기 위해 몸에 익힌 인간 여성들도 있다. 그녀들의 말은 테레의 말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이렇게 점점 테레들의 횡포 속에서 세상은 인류 문명의 고상한 기품을 잃고 테레의 야만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만다.

 

"억울하다. 비통하다. 만약 인간 남성이 테레들에 멸종되지만 않았어도 이런 비참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어디선가 억울하게 멸종한 인간 남성의 곡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자, 그런데 이것이 과연 만화적 상상력의 세계에서만 벌어지는 일일까? 위에서 언급한 테레들의 만행은 사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일들이다.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여성을 골라 살해하거나, 등산객 여성을 숲으로 데려가 살해하거나, 60대 테레가 어린 여자아이를 강간해서 신체를 훼손하는 등의 장면이 포함되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별로 다르지 않다.

 

아, 그렇다면 이미 '테레'의 침략은 시작된 것이 아닐까. 평행우주 이론으로 설명하자면 '우리 우주'의 테레는 멸종한 대신, 그 바이러스를 지상에 남겨둔 것이다. 그리고 그 테레 바이러스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의 몸 속으로 침투해 들어와 우리를 테레화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가설이 가능하다. 한편, 테레 바이러스는 인간 남성에게서 감염 속도가 월등히 빠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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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나타나는 현상만 보자면 '테레와의 전쟁'을 선포해야 할 상황이 아닐까? 지금 대체 얼마 만큼의 인간 남성들이 이미 테레화한 것일까? 이 글을 쓰는 남성인 나 자신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어떤 경로로, 어느 정도 수준으로 내가 테레 바이러스에 이미 감염되었는지 스스로는 잘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방금 혹시라도 내 손톱이 초록색으로 물들지 않았는지 확인해 보았다. 다행이다. 아직 테레 바이러스가 손톱까지 침투는 하지 않았다.

 

<악어 프로젝트>는 감염의 불안에 휩싸인 우리 인간 남성들에게 주어진 귀중한 처방전인지도 모르겠다. <악어 프로젝트>를 정독하고, 여기에 나와 있는 '테레들처럼 행동하지 않으려고 애쓰면' 우리는 테레 바이러스의 감염 확산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 여성들에게도 분명 유익한 부분들이 있다. 테레들의 위협에 대처하는 적절한 방법이라든지, 인간 남성이 얼만큼 테레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는지 알아 볼 수 있는 척도들이 제시되어 있는 것이다. 남성 여성을 가리지 않고 테레의 위협에 맞서고자 하는 인간들에게 참으로 유익한 만화책이다.

 

테레 바이러스에 가장 취약한 인간 남성이기에 불안에 떨던 나는 <악어 프로젝트>를 읽고 나 자신의 감염도를 체크해볼 수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몇몇 부분에서 감염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 정말 그 누구도 안심할 수 없다. 우리는 분명히 테레 바이러스의 침공을 받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인류는 테레에게 사실상 멸종 당할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미리 경각심을 갖고 테레 바이러스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지만 우리는 인류 멸종의 비극을 지연시킬 수 있다.

 

참고로, 페미니스트들은 이 '테레 바이러스'를 '가부장제' 혹은 '마초이즘'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뭐 중요한 것은 아니다. 상식으로 알아두면 좋을지도) 그나저나 우리가 언제까지 이 테레 바이러스의 위협에 전전긍긍하며 살 것인가. 모두 이성과 감성(공감)이라는 무기를 들자! 이제 그만 테레의 위협에서 함께 진정한 해방을 맞이하자! 자, 우리 모두 일치 단결하여 '테레와의 전쟁'을 벌이자!

 

 

2016. 6. 12. 도서관지기 장명진. 

* 이 리뷰는 <악어 프로젝트> 출간 당시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 작성했던 리뷰입니다. 성별을 떠나서 두루 읽고 우리들 각자 삶의 태도를 돌아보기에 유익한 책이라 여겨 소개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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