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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책

길 위의 책 #11 - 시진핑 빼고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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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중국의 체온>

저자 : 쑨 거

출판사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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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빼고 중국 

 

 

시진핑 주석을 빼놓고 오늘날의 중국을 말할 수 있을까. 중국에 대해 물으면 사람들은 으레 시진핑에 대해 말한다. 일대일로와 해상실크로드를, 독재와 국제패권, 반인권적 이슈들을 입에 올린다. 자연스레 이야기는 중국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로 빠져버린다.

 

그래서 당신은 (시진핑의) 중국을 좋아합니까, 싫어합니까?

 

최근 몇 년간의 한-중 관계를 생각하면 위 질문에 힘차게 “네! 정말 좋아합니다!” 라고 답할 수 있는 한국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2017년 기준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60% 이상이 중국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조금 심술을 부려서 질문을 이렇게 시작해보면 어떨까.

 

당신은 중국을 아시나요?

 

시진핑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커트. 시진핑 말고, 중국의 현대문화와 중국 민중들의 삶, 그리고 최근 그들의 문제의식 등에 하나하나 묻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난색을 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들은 시진핑을 뺀 나머지의 중국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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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자치구와 각각이 한반도 정도의 크기를 지닌 지방 '성'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나라 중국

 

 

거대한 대륙 속에, 10억의 인구와 56개의 다민족, ‘성’으로 분류되는 자치구역, 각 지역과 민족마다 고유의 색깔을 지켜온 다양한 전통문화까지 고려하면 우리는 도무지 중국이라는 나라를 알 수 없게 되고 만다. ‘하나의 중국’은 단지 정권의 캐치프레이즈일 뿐, 중국이라는 거대한 공동체는 한 가지 표현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베트남을 여행하며 크게 성찰한 것이 한 가지 있다. 베트남의 티브이를 켜면, 여러 동남아 국가는 물론, 중국, 인도, 일본의 방송 및 드라마를 손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 속에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아시아 민중의 모습들이 담겨 있었고, 자연스레 나는 여러 아시아인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실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국내에 돌아와 티비를 켰을 때는 우리를 제외한 아시아권의 방송들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자리를 영미권과 유럽권 방송이 대신하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우리가 한국인이란 것 외의 정체성을 감각하게 만들기에는 부족했다. 

 

나 역시 8시 뉴스를 시청한 것과, SNS에 떠도는 정보를 흘려본 기억을 조각조각 이어붙여 중국이나 세계에 대해서 잘 안다고 떠들고 다녔던 한 사람이었다. 쑨 거의 책 <중국의 체온>은 그것이 어설픈 오만이었음을 실감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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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5년생 쑨 거는 중국을 대표하는 저항적 지식인이다

 

 

<중국의 체온>은 오늘날 중국을 소개하는 책임에도 시진핑 주석의 모습이 그다지 등장하지 않는다. 그 자리를 다양한 지역과 다양한 가치관, 다양한 이야기를 지닌 민중들이 채우고 있다. 24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중국의 체온>은 각 편이 독립된 에세이로서 문학적 매력을 발산하는 동시에, 중국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인문학적 르뽀르타주의 역할을 수행한다. 

 

저자 쑨 거는 “오늘의 중국을 알기 위해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중국인의 체온을 느끼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진짜 중국이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첨예한 시각들이 대립할 수밖에 없는 대만과 홍콩, 인권과 반민주의 문제에 대해서도 저자는 거침 없이 내부자의 시선을 옮겨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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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과 홍콩의 문제는 경제적 이득을 떠나, 앞으로의 중국 민중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철학적 과제이기도 하다

 

 

짐짓 팔장을 낀 채로 바라본다면 개발독재 시대에 우리 지식인들이 지녔을 법한 내부자의 시선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 국제적 시각에서 적당히 내부를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국가 고유의 특성(이른바 한국적 민주주의)과 자주성을 강조하는 - 일본과 중국의 학계를 바삐 오가며 획득한 저자 특유의 세계관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책에는 우리가 놓쳐버린 무언가를 다시 찾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것은 이 책에 우리와 같이 현대를 살아가며, 한계에 도전하고, 문제를 극복하는 인간의 체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쪽으로 가야 할까 저쪽으로 가야 할까 망설이는 중국 민중의 고민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민중들은 지역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산보’라 불리는 시위를 일으켜 정부와 싸우고, 홍콩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적 욕망에 휩쓸려가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전통의 아름다움을 미래로 옮기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정치적 구호와는 무관하게 민족과 국경, 바다를 건너 어떤 중국인들은 이웃 국가의 민중들과 애써 온기를 나누고자 최선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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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민중은 결코 시황제의 말 잘듣는 백성이 아니었다

 

 

책을 덮으며 넷플릭스에서라도 현대 중국 드라마를 한 편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 앵커의 목소리를 통해 건조하게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는 요우커와는 완전히 다른 한 인간의 삶이 거기에는 있을 것이다. 어쩌면 한류 드라마를 모방한 뻔한 내용의 드라마일지라도, 일하고, 사랑하고, 번민하는 중국인의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나는 비로소 아시아인이라는 더 큰 범주의 정체성을 아주 오랜만에서야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일은 어쩌면 저녁 뉴스로 시진핑과 김정은의 악수를 보며 흡족해하는 일보다 더 꼭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2018. 10. 24. 여행인문학도서관 길 위의 꿈 도서관지기 장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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