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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영화

길 위의 영화 #6 - 댄서 /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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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 밖으로 날아간 새는 어디에 있을까 


초등학교 4학년 즈음의 기억이다. 친구는 하루종일 울상이었다. 새장 속에 넣어 기르던 앵무새가 날아가버렸다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니 밥 묵었나-“라는 말을 가르쳐놓았다고 자랑하던 앵무새였다. 요즘이라면 휴대폰으로 동영상이라도 찍어놓았을 텐데, 당시는 아직 20세기였다. 친구는 종일 울상이었지만 다음 날에는 아무렇지 않게 평소처럼 웃었다. 지구상에 “니 밥 묵었나-“라는 말을 하는 앵무새가 있었다는 걸 이미 까먹은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꽤 오래 그 앵무새에 대해 생각했다. 혹시나 동네 뒷산에 숨어 들었나 싶어 혼자 숲 속에 앉아 어디선가 밥 어쩌구 하는 소리가 들리지는 않는지 귀를 기울였었다. 결국 앵무새는 찾지 못했다. 새장 밖으로 날아간 새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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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처럼 날아오르는 세르게이 폴루닌


불세출의 발레리노로 평가 받았던 세르게이 폴루닌은 1989년 우크라이나의 서민 가정에서 태어나 4살 무렵부터 발레를 시작했다. 일찍 천재성을 드러내며 10세 무렵에는 우크라이나의 키예프 국립발레단 단원이 되었고, 국제 발레 콩쿨에서 2위에 오른다. 아이의 장래를 위해 가족들은 세르게이를 영국의 로열 발레 학교에 입학시키고, 그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모두가 각기 포르투갈, 우크라이나, 그리스로 일자리를 찾아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세르게이는 자신이 성공하여 흩어진 가족들을 한 자리에 다시 모으겠다는 일념으로 어린나이에 런던에 홀로 남겨진 고독을 돌파해나간다. 세르게이는 천재성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하여 2009년에는 역대 최연소로 영국 로열발레단 수석 무용수 자리에까지 오른다. 

그러나 세르게이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세르게이가 런던에서 홀로 성장하는 사이, 가족들간의 관계는 점점 멀어졌고, 부모는 이혼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세르게이는 발레를 해야 할 목표를 잃고 발레단을 탈퇴한다. 음주와 파티가 이어지는 삶 속에서 망가져 가던 세르게이는 러시아의 전설적 무용수 이고르 젤렌스키의 초청으로 러시아 스타니슬라브스키 극장 수석 무용수로 재기하지만 근원적인 번민을 떨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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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영웅들에게는 영광과 좌절의 순간이 함께 하기 마련이지만


"나는 타인의 욕망들로 만들어진 인간이다."

이것이 세르게이 폴루닌의 근원적 번민이었다. 슈퍼스타의 위치에 오르고,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었지만 자신이 새장 속에 든 예쁜 새에 불과하다고 여기게 된 것이었다. 실제 상황이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미, 그렇게 생각한 이상 세르게이는 스스로를 마음의 새장 속에 가둔 셈이었다. 세르게이는 자신에게 욕망을 투사했던 사람들을 원망했다. 자신에게서 단란한 가족의 사랑을 앗아가고, 발레를 강요했던 사람들. 가족들, 교사들, 발레 관계자들. 특히 어머니는 그 모든 고통의 원흉처럼 여겨졌다. 어머니는 포근한 둥지에 있던 자신을 발레라는 새장 속에 가둔 사람이었다.

극한의 반복 훈련으로 완벽하게 정형화된 동작들, 턴과 도약을 반복하는 발레는 세르게이에게 단단한 철창과 같게 느껴졌다. 세르게이는 새장 밖으로의 탈출을 감행한다. 아일랜드의 가수 ‘호지어’의 곡 ‘날 교회에 데려다줘(Take Me To Church)’에 맞추어 자신의 자전적 삶을 표출한 춤 속엔 자신을 짓누르던 모든 것으로부터 날아올라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서 새롭게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세르게이 폴루닌의 새로운 춤은 조회수 2천만을 돌파하며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의 마음 또한 바꿔놓았다. 세르게이는 자신이 만든 새로운 춤을 통해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 춤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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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개를 접고 스스로 새장 속에 갇힌 세르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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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깨달았어, 았어- 날 사랑했다는 것을~


오래전 친구의 새장 속을 탈출한 앵무새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히야신스 마카우 같은 종은 50년을 산다고도 하니, 지금도 어딘가의 숲에서 자기만의 새로운 노래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고통은 외부로부터 오지만, 그 고통을 내면 속에 머무르게 만드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일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크고 작은 새장 속에 갇혀 있기 마련이다. 새장 안을 편안하게 여겨 머무르는 사람도 있을 테고, 갑갑하게 여겨 탈출하는 사람도 있다. 둘 다 저마다의 삶의 방식이다. 단, 명심해야 할 점은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새장을 열수 있는 열쇠는 자기 호주머니 속에 넣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곧 ‘자유’다. 세르게이 폴루닌은 자신을 깊게 들여다보며, 사랑의 기억을 되찾고, 가족들과 선생님들을 이해하고 용서함으로써 그 열쇠를 손에 넣었다. 세르게이 폴루닌은 이제 새장 밖으로 나올 자유와 함께 새장 속으로 들어갈 자유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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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어린 아이들을 미래의 무용가로 키우고 있는 어릴적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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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법은 다르고 서툴렀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같았던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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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르게이 폴루닌은 과거를 딛고 눈부시게 날아오른다


지금껏 남성의 육체에서 아름다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춤도 마찬가지였다. 기예로서 대단하다고 감탄한 일은 있었으나 아름답다고 감격한 일은 없었다. 세르게이 폴루닌의 몸이 빚어내는 단단한 선과 도약의 순간 나타나는 강렬함과 부드러움의 완벽한 조화는 이 세상에서 아직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내게 보여주었다. 내 안에 잠겨져 있던 새장의 철문 하나가 열렸다. 다큐멘터리 영화 <댄서>라는 열쇠를 내 호주머니 속에 넣게된 덕분이었다.  

"좋아, 이제 어디로 날아갈까?"

아마도 이 영화를 본 후 여러분 각자의 마음 속에 떠오를 질문일 것이다. 어디든 좋다. 여러분 자신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곳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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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월. 길 위의 꿈 도서관지기 장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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